GYEONGGI
경기도
京畿 · Gyeonggi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고을입니다. 왕도, 한강, 나루와 산성이 한 도 안에 있습니다.
이 땅의 역사
경기도는 조선이 한양에 도읍한 뒤, 그 수도를 둘러싼 땅입니다. 한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서쪽 끝은 갯벌과 섬입니다. 왕릉과 행궁, 나루와 산성이 가깝게 붙어 있습니다.
고려 때의 경기는 수도 개경 주변이었습니다. 개경은 이 지도의 북쪽 밖, 오늘의 개성 일대입니다. 조선이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경기라는 이름도 한양 기준으로 다시 잡혔습니다.
이 도의 큰 이야기는 도읍과 방어입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들어간 성이고, 수원 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찾아가려고 만든 계획도시입니다.
이름의 유래
경기(京畿)는 수도를 둘러싼 고을이라는 한자말입니다.
통설
京은 서울, 畿는 서울 근처를 뜻합니다. 고려가 수도 주변에 이 행정 이름을 썼고,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한 뒤 그 범위를 한양 기준으로 다시 짰습니다. 경상·전라처럼 두 고을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 아닙니다.
다른 설
특정 산이나 강의 이름을 줄여 경기가 됐다는 풀이는 통설이 아닙니다. 소리만 비슷한 다른 지명과 섞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땅의 결
경기 사람은 수도의 그늘과 혜택을 같이 받았습니다. 과거와 시장은 한양으로 모였고, 고을은 왕실의 능과 행차를 치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서해 쪽은 포구와 섬의 땅이고, 동쪽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골에 가깝습니다. 한 도라고 해서 풍경이 한 가지인 것은 아닙니다.
주요 도시
같은 도의 다른 고을
광주 (廣州)
경기도 광주와 전라도 광주(光州)는 소리가 같을 뿐 다른 고을입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에 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여기로 들어갔고, 이듬해 한강 남쪽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했습니다.
개성
고려의 수도 개경은 오늘의 행정 구역으로 이 지도 북쪽 밖에 있습니다. 경기도 이야기에 개경이 나오는 것은, 경기라는 이름이 거기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 사이트는 그 북쪽 도를 따로 그리지 않습니다.
길목의 사건
한양 천도, 1394년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개경을 떠나 한양을 도읍으로 정합니다. 궁궐과 종묘, 시장과 성벽이 한강 북쪽에 자리 잡습니다. 이때부터 경기의 중심은 한양입니다.
병자호란, 1636년
청나라 군이 한양 가까이 들어오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갑니다. 성 안에서는 화친을 말하는 최명길과 맞서자는 김상헌의 주장이 갈렸습니다. 마흔날가량 뒤 항복합니다. 영화 「남한산성」의 대사는 소설을 거친 창작입니다.
문화 메모
한양의 하루는 궁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전 상인, 과거 보러 온 선비, 한강 얼음 위의 나루가 같은 도시에 있었습니다.
왕릉은 도성 밖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경기 고을에는 조선 왕의 무덤이 유난히 많습니다. 무덤이 있다고 해서 그 왕이 그 고을 출신인 것은 아닙니다.
관련 영화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남한산성」
The Fortress · 2017 · 영화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복하기까지의 겨울을, 싸우자는 말과 화친하자는 말이 갈리는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습니다. 전라도 광주(光州)가 아닙니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다른 주장을 한 일은 역사입니다. 대사와 인물의 속마음은 김훈의 소설을 거친 창작입니다. 삼전도의 항복 자체는 1637년의 사실입니다.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 2019 · 영화
훈민정음이 어떤 문제 — 말은 있는데 적는 글자가 자기 말에 안 맞는다 — 에서 시작됐는지 보고 싶을 때 고릅니다. 영어 제목은 The King's Letters입니다.
세종 혼자 글을 만들었다는 실록의 큰 줄과, 승려 신미가 창제의 중심에 있었다는 설을 영화가 뒤쪽에 무게를 둡니다. 신미 설은 연구자 일부의 다른 설이지 교과서의 통설이 아닙니다. 궁궐 대화와 갈등은 극본입니다.
「사도」
The Throne · 2015 · 영화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그 아들 정조로 이어지는 궁중의 그늘을 한 편으로 만날 때 가장 많이 찾는 영화입니다.
1762년 영조가 세자를 뒤주에 가두게 하고, 세자가 그 안에서 죽은 일은 기록된 사건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갔는지 — 병인지, 당파인지 — 는 영화가 고른 해석입니다. 부자의 대화는 회의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