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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仁川 · 경기도
백제 미추홀 전승이 있는 서해의 고을입니다. 오늘의 큰 항구는 조선 후기 제물포가 열린 뒤의 얼굴입니다.
이름의 유래
인천은 고려·조선의 인주(仁州)를 고친 행정 이름입니다.
통설
이 일대는 고려 때 인주, 경원부 등으로 불렸습니다. 조선 태종 13년(1413) 무렵, ‘주’로 끝나 서로 헷갈리던 고을 이름을 정리하면서 인주가 인천이 되었다는 것이 지리지의 통설입니다. 수주가 수원이 된 것과 같은 개편입니다.
다른 설
미추홀은 삼국사기가 전하는 백제 초의 지명입니다. 온조가 동생에게 미추홀을 주었다는 문장은 건국 전승이지, 인천이라는 한자 이름의 직접 어원은 아닙니다. ‘어진 내’라는 글자 뜻풀이도 개명 기록보다 뒷전입니다.
어떻게 선 고을인가
삼국사기 백제 본기는 온조 시대의 미추홀을 적습니다. 위치는 오늘의 인천 일대로 비정하는 것이 통설에 가깝습니다. 건국 연대의 세밀한 사건은 전승으로 읽습니다.
한강 하구라 백제·고구려·신라가 서해를 두고 다툴 때 이 해안이 같이 흔들렸습니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수도로 가는 바닷길의 입구에 가깝습니다. 강화도는 바로 옆 섬으로, 별도 고을로 대우받은 시기가 깁니다.
누가 다스렸나
인천 고을의 중심은 오래도록 바닷가 포구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내륙의 읍치와 해안의 포구가 나뉘어 있었습니다. 제물포는 그 해안 포구의 이름입니다.
왕실과 직접 연결된 별도 세력의 수도였던 적은 없습니다. 경기 관찰사와 한성부의 그늘 아래, 서해의 관문이었습니다.
길목의 사건
제물포 개항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 등이 열렸고, 제물포가 실제로 개항한 것은 1883년입니다. 이때부터 인천은 ‘옛 읍’과 ‘새 항구’가 겹친 도시가 됩니다. 월미도·제물포의 풍경을 세종 시대의 인천으로 되돌리면 안 됩니다.
강화와 구분
고려의 대몽 항쟁, 병인양요·신미양요, 강화도 조약의 자리는 강화도입니다. 인천과 배가 닿을 만큼 가깝지만 같은 읍의 별명이 아닙니다. 연산군의 유배지도 강화 교동 쪽입니다.
문화 메모
갯벌과 섬, 소금과 배가 이 고을의 살림이었습니다. 한양의 시전처럼 왕실 물자를 대는 포구이면서, 동시에 어촌이었습니다.
오늘의 국제공항과 차이나타운은 20세기 이후의 층입니다. 역사 글의 인천을 공항 안내로 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