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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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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YANG / SEOUL

한양 · 서울

漢陽 · 서울 · 경기도

백제의 첫 도읍 전승이 있고, 조선이 1394년부터 나라의 중심으로 삼은 한강 북쪽 도시입니다.

이름의 유래

한양은 한강의 북쪽이라는 뜻의 고려·조선 지명이고,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고유어입니다.

통설

陽은 강의 북쪽을 가리키는 한자 지명의 관습입니다. 한양(漢陽)은 한강 북쪽 고을이라는 뜻이 통설입니다. 조선은 도읍을 정한 뒤 행정 이름으로 한성(漢城)을 썼습니다. 서울은 수도를 가리키는 우리말이고, 1946년부터 도시의 공식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른 설

서울과 신라의 서라벌이 같은 계통의 말이라는 설명은 언어학에서 유력합니다. 다만 조선이 ‘서라벌을 서울로 개명했다’는 문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말의 갈래를 재구한 설입니다. 경성(京城)은 일제강점기에 쓰인 이름이지 조선이 처음부터 쓴 도읍 이름이 아닙니다.

어떻게 선 고을인가

삼국사기는 백제의 온조가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도읍했다고 적습니다. 기원전 18년이라는 연대와 초기의 왕 이야기는 후대에 정리된 전승입니다. 한강 주변에 백제 초기 유적이 있는 것은 고고학이 뒷받침합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치고 개로왕이 죽자, 백제의 도읍은 웅진(공주)으로 내려갑니다. 한강 유역은 그 뒤 고구려와 신라의 손이 오갑니다. 신라 진흥왕이 한강으로 나온 6세기의 비석(북한산 순수비)이 그 자취입니다.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었습니다. 한양은 남쪽의 큰 고을이었지 수도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태조가 1394년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한성부가 됩니다.

누가 다스렸나

조선의 왕은 경복궁을 법궁으로 두었고, 창덕궁·창경궁·경희궁에서 실제로 오래 지낸 시기도 있습니다. 덕수궁은 대한제국 때 무게가 실린 궁이라, 세종 시대의 풍경과 같은 층이 아닙니다.

한성부 판윤이 도시를 맡았습니다. 성 안에는 종로 시전이, 성 밖에는 한강 나루가 있었습니다. 과거 시험이 열리는 날이면 경기와 팔도의 사람이 이 성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길목의 사건

도성

태조 때 쌓기 시작한 한양도성은 북악·낙산·남산·인왕을 잇습니다. 정확한 완공 연도를 한 해로만 외우기보다, 조선 전기에 도읍의 경계가 성벽으로 보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성 밖이라고 빈 들은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1592년 선조는 한양을 비우고 북으로 피합니다. 왜군이 도성을 점령했다가 물러갑니다. 1636년에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고, 항복의 자리인 삼전도는 한강 남쪽, 오늘의 서울 송파 일대입니다.

서울이라는 이름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이라 불렸습니다. 1946년 서울이라는 고유어가 공식 이름이 됩니다. 한양·한성·경성·서울은 같은 자리의 다른 층 이름입니다.

문화 메모

종묘는 조선 역대 왕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궁궐이 정치의 집이라면 종묘는 왕실의 제사 자리입니다. 둘을 관광 동선으로만 묶으면 기능이 사라집니다.

훈민정음은 이 도시의 궁궐과 집현전에서 1443년에 만들어져 1446년에 반포됩니다. 자세한 전말은 세종 글에 적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와 「천문」은 그 시대를 극으로 다시 만든 작품입니다.

경기도 전체 보기

다섯 궁궐한양도성과 사대문궁궐 연표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 2019 · 영화

    훈민정음이 어떤 문제 — 말은 있는데 적는 글자가 자기 말에 안 맞는다 — 에서 시작됐는지 보고 싶을 때 고릅니다. 영어 제목은 The King's Letters입니다.

    세종 혼자 글을 만들었다는 실록의 큰 줄과, 승려 신미가 창제의 중심에 있었다는 설을 영화가 뒤쪽에 무게를 둡니다. 신미 설은 연구자 일부의 다른 설이지 교과서의 통설이 아닙니다. 궁궐 대화와 갈등은 극본입니다.

    세종한양경복궁

  •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 2019 · 영화

    세종 시대의 과학, 특히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을 때 분위기를 잡아 줍니다. 자격루와 하늘을 재는 기구가 왜 정치였는지를 크게 보여 줍니다.

    장영실이 노비 출신으로 올라가 자격루 등에 관여한 일은 기록에 있습니다. 왕과의 우정, 말년의 행적, 극의 갈등은 창작에 가깝습니다. 파직 이후의 삶은 사료가 짧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전기로 외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세종한양경복궁

  • 「왕의 남자」

    King and the Clown · 2005 · 영화

    연산군 시대의 궁궐을, 광대들이 왕 앞에서 연극을 하는 이야기로 기억할 때 자주 나오는 영화입니다.

    연산군이 1494년부터 1506년까지 왕이었고, 두 차례 큰 사화 끝에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일은 역사입니다. 장생과 공길은 실존 광대가 아닙니다. 왕의 취향과 광대들의 사랑은 극입니다.

    연산군한양경복궁

  • 「남한산성」

    The Fortress · 2017 · 영화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복하기까지의 겨울을, 싸우자는 말과 화친하자는 말이 갈리는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습니다. 전라도 광주(光州)가 아닙니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다른 주장을 한 일은 역사입니다. 대사와 인물의 속마음은 김훈의 소설을 거친 창작입니다. 삼전도의 항복 자체는 1637년의 사실입니다.

    경기도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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