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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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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BOKGUNG

경복궁

景福宮 · 법궁

1395년 중심 전각 · 태조

조선의 법궁입니다. 법을 행하는 으뜸 궁이라는 뜻입니다. 1395년에 중심이 섰고, 임진왜란 때 탄 뒤 270년 가까이 비어 있다가 고종 때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름의 유래

경(景)은 크고, 복(福)은 복입니다. 큰 복을 누리라는 이름입니다.

통설

정도전이 시경의 구절에서 따 태조에게 올린 이름입니다.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도 그가 뜻을 붙여 부른 전각입니다. 왕의 집이면서 정치의 구호를 건물에 새긴 이름입니다.

언제, 누가, 왜

1394년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경복궁 조성이 시작됩니다. 1395년(태조 4년)에 중심 전각이 섰고, 담장은 1398년에 마무리됩니다. 정도전이 설계와 이름에 관여했습니다. 그해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은 죽고, 궁의 실권은 왕자들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법궁은 ‘있어야 할 궁’입니다. 왕이 늘 여기만 산 것은 아닙니다. 태종이 동쪽에 창덕궁을 둔 뒤부터, 거처는 궁을 옮겨 다녔습니다.

누가 머물렀나

태조에서 선조 앞까지

세종은 이 궁의 집현전에서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입니다. 그때의 이름은 한글이 아닙니다. 집현전이 있던 자리로는 지금의 수정전을 가리킵니다. 지금 건물은 고종 때 다시 지은 층입니다.

연산군도 경복궁의 왕입니다. 무오사화(1498)와 갑자사화(1504)가 이 재위의 정치입니다. 경회루의 잔치는 영화가 키운 장면이고, 죽은 선비의 명단이 기록의 중심입니다.

비어 있던 270년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을 비운 뒤 경복궁은 탑니다. 광해군은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다시 지어 법궁으로 삼습니다. 그 뒤로 영조·정조 세대까지 왕은 동궐과 경희궁에 있었습니다.

고종

1865년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이름으로 중건을 시작합니다. 1867년에 중심 전각이 섰고, 고종은 이듬해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때까지가 고종의 경복궁 시기입니다. 공사관에서 나온 뒤에는 경운궁으로 갔지, 경복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주요 사건

계유정난, 1453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단종의 실권을 가져갑니다. 김종서를 죽인 곳은 그의 집이지 근정전이 아닙니다. 그래도 법궁이 경복궁이던 한양의 조정 사건이라 나두연표와 잇습니다. 수양대군은 뒤에 세조가 됩니다. 세조의 왕 글은 없고, 가족관계도 칸만 있습니다.

임진왜란, 1592년

왜군이 한양에 들어오기 전 궁궐이 탑니다. 누가 먼저 불을 질렀는지는 기록마다 엇갈려, 여기서는 한 쪽으로 못 박지 않습니다. 확실한 결과는 법궁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나두연표에는 임진왜란 사건이 따로 없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중건, 1865–1867년

원납전이라는 부담을 백성에게 거두며 서둘러 다시 지었습니다. 경희궁 전각 대부분을 헐어 자재로 쓴 일도 이 공사에 있습니다. 대원군은 왕이 아닙니다. 어린 고종의 아버지로 정사를 맡은 시기입니다.

을미사변, 1895년 10월 8일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됩니다.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 등이 가담한 사건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건청궁은 1873년 고종이 경복궁 안에 따로 지은 거처입니다. 왕비를 죽인 일의 도덕적 변명은 여기에 적지 않습니다.

아관파천과 돌아오지 않은 환궁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경복궁을 빠져 러시아 공사관으로 갑니다. 아관파천입니다. 1897년 2월 20일 공사관을 나와 경운궁으로 돌아옵니다. 대한제국 선포(1897년 10월 12일)의 자리도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 옆 환구단입니다.

조선총독부 청사

1926년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가 완공되어 법궁의 축을 막습니다. 철거는 1995년 광복절에 시작해 1996년에 건물이 없어집니다. 1995년 한 해에 사라졌다고 쓰면 해가 하나 어긋납니다.

꼭 볼 건물

근정전

Geunjeongjeon

정전입니다. 왕이 신하를 만나는 공식 자리입니다. 근정은 부지런히 정사를 보라는 뜻이고, 이름도 정도전이 붙였습니다. 지금 건물은 태조의 건물이 아니라 1867년 중건의 건물입니다.

경회루

Gyeonghoeru

연못 위의 누각입니다. 사신 잔치와 과거가 열리던 곳입니다. 태종 12년(1412)에 크게 다시 지었고, 임진왜란 때 탔습니다. 지금 누각은 고종 중건 때의 것입니다.

강녕전 · 교태전

Gangnyeongjeon, Gyotaejeon

강녕전은 왕의 침전,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입니다. 1995년 복원된 건물입니다. 고종 때 모습으로 되돌린 것이지, 세종 때의 나무가 아닙니다.

향원정

Hyangwonjeong

건청궁 북쪽 연못의 정자입니다. 고종 때 지었고, 이름 기록은 1887년에 보입니다. 연못을 건너는 취향교는 한국전쟁 때 끊긴 뒤 남쪽에 임시로 놓였다가, 2021년 보수에서 북쪽의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건청궁

Geoncheonggung

1873년에 지은 왕의 거처입니다. 을미사변의 자리입니다. 지금 건물은 2006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광화문

Gwanghwamun

정문입니다. 1927년 총독부가 문을 다른 곳으로 옮겼고, 1951년 한국전쟁 때 문루가 탑니다. 1968년에는 콘크리트로, 자리도 비켜 세웠습니다. 2010년에 나무로, 원래 자리에 다시 세웠습니다.

훼손과 복원

일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핑계로 전각을 많이 헐었고, 1926년 총독부 청사로 정면을 막았습니다. 고종 때 500동 안팎이던 건물은 청사가 철거될 무렵 수십 동만 남아 있었습니다.

1차 복원정비는 1990년부터 2010년까지입니다. 광화문, 흥례문, 강녕전, 태원전 등이 이 시기에 돌아왔습니다. 2차는 2011년에 이어졌고, 2015년에 건물 수를 줄이면서 기간을 2045년까지로 늘려 잡았습니다. 향원정(2021)처럼 끝난 구간이 있고, 빈궁 처소 영훈당처럼 아직 공사 중인 구간이 있습니다. 2045년은 발표된 계획의 끝이지, 현장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관람

광화문에서 근정전, 경회루로 가는 선이 중심축입니다. 향원정과 건청궁은 북쪽 깊숙한 곳입니다. 야간 개방은 철마다 달라 날짜를 여기 적지 않습니다.

태조세종연산군가족관계도의 고종가족관계도의 흥선대원군가족관계도의 명성황후한양 · 서울궁궐 연표한양도성과 사대문조선의 건국 · 나두연표훈민정음을 만들다 · 나두연표훈민정음을 반포하다 · 나두연표계유정난 · 나두연표서울 시내 탐험에서 보기 (경복궁)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 2019 · 영화

    훈민정음이 어떤 문제 — 말은 있는데 적는 글자가 자기 말에 안 맞는다 — 에서 시작됐는지 보고 싶을 때 고릅니다. 영어 제목은 The King's Letters입니다.

    세종 혼자 글을 만들었다는 실록의 큰 줄과, 승려 신미가 창제의 중심에 있었다는 설을 영화가 뒤쪽에 무게를 둡니다. 신미 설은 연구자 일부의 다른 설이지 교과서의 통설이 아닙니다. 궁궐 대화와 갈등은 극본입니다.

    세종한양경복궁

  •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 2019 · 영화

    세종 시대의 과학, 특히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을 때 분위기를 잡아 줍니다. 자격루와 하늘을 재는 기구가 왜 정치였는지를 크게 보여 줍니다.

    장영실이 노비 출신으로 올라가 자격루 등에 관여한 일은 기록에 있습니다. 왕과의 우정, 말년의 행적, 극의 갈등은 창작에 가깝습니다. 파직 이후의 삶은 사료가 짧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전기로 외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세종한양경복궁

  • 「왕의 남자」

    King and the Clown · 2005 · 영화

    연산군 시대의 궁궐을, 광대들이 왕 앞에서 연극을 하는 이야기로 기억할 때 자주 나오는 영화입니다.

    연산군이 1494년부터 1506년까지 왕이었고, 두 차례 큰 사화 끝에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일은 역사입니다. 장생과 공길은 실존 광대가 아닙니다. 왕의 취향과 광대들의 사랑은 극입니다.

    연산군한양경복궁

  • 「대장금」

    Jewel in the Palace · 2003 · 드라마

    중종 시대 궁중의 의녀를 처음 상상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드라마입니다. 이야기의 궁은 임진왜란 이전에 법궁이던 경복궁이고, 창경궁 환경전도 장금의 진료와 이어 읽습니다.

    장금이라는 의녀가 중종 때 실록에 나오고, 대비전과 중궁전에서 진료해 상을 받은 일은 기록입니다. 궁중 음식과 경쟁, 사랑의 줄거리는 드라마입니다. 화면의 전각은 세트인 부분이 큽니다. 경복궁을 그 화면 그대로 기억하면 안 됩니다.

    경복궁창경궁 · 환경전가족관계도의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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