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AS
시대
연대는 교과서와 삼국사기·고려사·실록에서 널리 쓰는 눈금입니다. 건국 신화의 해는 사실처럼 굵게 쓰지 않습니다. 북쪽 나라의 영토는 이 글에서 지도로 그리지 않고, 남쪽과 닿는 해만 적습니다.
THREE KINGDOMS AND GAYA
삼국과 가야
기원전 1세기 무렵 – 668년
남쪽에서는 백제와 신라와 여러 가야가 커졌습니다. 고구려는 이 지도의 북쪽 밖에서 남쪽으로 손을 뻗친 나라로만 적습니다.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삼한은, 삼국이 커지기 전의 작은 정치체들을 묶는 이름입니다. 경계가 오늘의 도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백제는 마한 쪽, 신라는 진한 쪽, 가야는 변한 쪽과 연결해 읽는 것이 통설에 가깝습니다.
백제의 첫 도읍 전승은 한강 유역, 오늘의 서울 일대입니다. 475년 고구려에 한성을 잃은 뒤 공주, 538년부터는 부여가 수도입니다. 신라는 줄곧 경주입니다. 가야는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처럼 여러 나라이고, 6세기에 신라로 흡수됩니다.
전통적인 건국 연대 — 신라 기원전 57년, 고구려 기원전 37년, 백제 기원전 18년 — 는 삼국사기가 정리한 연표입니다. 그 초기의 왕 이야기는 전설이 많습니다. 4세기 이후의 전쟁과 외교는 기록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660년 백제가, 668년 고구려가 신라와 당의 연합에 무너집니다. 남쪽 지도에서 이 시대의 끝은 백제와 가야의 이름이 사라지는 때입니다.
UNIFIED SILLA
통일신라
676년 무렵 – 935년
신라는 당과 싸운 뒤 한강 이남의 땅을 다졌습니다. ‘삼국통일’은 남쪽을 기준으로 한 교과서 말입니다.
문무왕 때 신라는 당나라 군대와 싸워 676년 무렵 한강 유역을 포함한 남쪽을 확보합니다. 옛 고구려 땅 북쪽에 698년 발해가 섭니다. 발해의 영토는 이 지도에 그리지 않습니다. 남쪽의 수도는 여전히 경주입니다.
8세기는 불국사·석굴암, 왕릉, 지방 장관인 주·군 제도가 정비되는 시기입니다. 왕은 경주에 있고, 지방은 촌주와 관리가 나눕니다. 9세기 말에는 세금과 도적이 흔들리며 견훤과 궁예가 일어납니다.
900년 견훤의 후백제(전주), 901년 궁예의 후고구려(뒤에 왕건의 고려)가 신라와 함께 후삼국이라 불립니다.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고, 936년 후백제가 무너집니다. 경주는 수도의 지위를 잃습니다.
GORYEO
고려
918년 – 1392년
왕건이 연 나라입니다. 수도 개경은 이 지도 북쪽 밖에 있고, 남쪽 고을은 도와 군현으로 묶입니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엽니다. 수도는 송악의 개경입니다. 오늘의 행정으로는 지도 밖이므로, 이 사이트는 개경의 궁궐 안내 대신 남쪽 고을과 닿는 정치만 적습니다.
광종은 과거와 노비안검으로 왕권을 다졌습니다. 현종 때 지방을 도로 정리하면서 경상·전라 같은 도 이름이 자리 잡습니다. 경기의 원래 위치도 이 시기에는 개경 주변입니다.
후기에는 몽골(원)의 간섭이 길었습니다. 공민왕은 그 간섭을 털려 했습니다. 왜구가 남해안을 치는 일도 이 시대의 남쪽 경험입니다. 1392년 이성계가 나라를 바꿉니다.
JOSEON
조선
1392년 – 1897년 무렵
한양이 도읍이 된 나라입니다. 이 사이트의 고을 이름은 대부분 이 시대의 행정에서 익숙해진 말입니다.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고,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깁니다. 경기·충청·경상·전라·강원과 북쪽의 도들이 관찰사 체제로 돌아갑니다. 이 사이트는 그중 남쪽만 고릅니다. 제주 같은 섬은 전라도 관찰사가 맡는 먼 고을이었습니다.
세종 때 훈민정음이 나옵니다. 그때의 이름은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입니다.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은 한양과 경상·전라·경기의 산성을 같이 흔듭니다. 영조와 정조 사이에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수원 화성이 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의 개항, 식민, 분단은 이 1편의 범위를 넘습니다. 고을 이름이 바뀐 대목 — 한성이 서울이 된 일, 대전·세종처럼 커진 도시 — 만 해당 고을에서 짧게 적습니다. 없는 현대사를 채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