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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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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DEOKGUNG

창덕궁

昌德宮 · 이궁, 뒤에는 사실상의 법궁

1405년 조성 시작 · 태종

태종이 경복궁 동쪽에 둔 이궁입니다. 임진왜란 뒤 광해군이 다시 지어 법궁으로 삼았고, 조선 후기 왕들이 가장 오래 산 궁입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이름의 유래

창(昌)은 성하다는 뜻이고, 덕(德)은 덕입니다. 덕이 성하라는 이름입니다.

통설

태종이 붙인 궁호로 전합니다. 경복궁의 ‘큰 복’이 나라의 구호라면, 창덕은 왕과 정치의 덕을 말한 이름입니다. 다른 풀이를 사실처럼 덧붙이지는 않습니다.

언제, 누가, 왜

1405년(태종 5년)에 조성을 시작합니다. 그해에 다 지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후원은 1406년부터 가꾸고, 정문 돈화문은 1412년입니다. 경복궁이 공식의 으뜸이어도, 왕이 피해 있을 곳이 필요했습니다. 이궁은 그 둘째 궁입니다.

바로 동쪽에 창경궁이 붙어 둘을 합쳐 동궐이라 부릅니다. 서쪽의 경희궁은 서궐입니다.

누가 머물렀나

태종과 광해군

태종이 이궁으로 시작했습니다. 세종에게 왕위를 넘긴 뒤의 상왕 거처는 옆의 수강궁, 곧 창경궁의 앞 이름입니다. 광해군은 1610년 창덕궁을 다시 지어 법궁으로 삼고, 1611년 정릉동 행궁에서 이곳으로 옮깁니다.

인조 이후의 거처

1623년 인조반정 때 전각 대부분이 탑니다. 다시 지은 뒤에는 인조부터 철종까지 많은 왕이 여기서, 또는 붙은 창경궁에서 살았습니다. 영조는 말년에 경희궁을 더 자주 썼고, 정조는 후원에 규장각을 두었습니다. 정조가 죽은 곳은 창덕궁이 아니라 창경궁 영춘헌입니다.

순종

순종은 1907년 황제가 된 뒤 창덕궁으로 옮겨 1926년 대조전에서 죽습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산 궁입니다. 고종의 말년은 덕수궁입니다. 두 궁을 한 황제의 집으로 겹치지 않습니다.

주요 사건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중건

1592년에 탔습니다. 광해군이 1610년 다시 지어 법궁으로 삼기 전까지, 선조는 정릉동 행궁에 있었습니다.

인정전과 내전의 불

1803년 인정전이 타고 1804년에 다시 지어집니다. 지금 정전의 뼈대는 그때의 것입니다. 1833년에는 대조전과 희정당이 타고 1834년에 재건됩니다. 불은 한 번이 아닙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1882년 임오군란 때 군중이 창덕궁에 들어옵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개화파는 고종을 관물헌에 둡니다. 둘 다 궁 안의 정치 사건이고, 건물을 다시 지은 해와는 다른 줄입니다.

1910년 흥복헌

한일병합조약이 창덕궁 흥복헌에서 맺어집니다. 순종이 살던 궁에서 나라의 외교가 넘어간 자리입니다. 조약의 본문을 여기 옮기지는 않습니다.

1917년 화재와 1920년 재건

1917년 대화재로 대조전이 탑니다. 1920년 대조전과 희정당을 다시 지을 때 경복궁 건물을 헐어 썼습니다. 경희궁 건물을 옮겨 세웠다는 말과 섞지 않습니다. 궁능 연표는 경복궁 건물을 적습니다.

유네스코, 1997년

1997년 창덕궁이 세계유산이 됩니다. 후원의 자리와 조선 후기 궁의 결이 남은 점이 이유입니다. 다섯 궁 가운데 이 궁만 그 목록에 있습니다. 종묘는 1995년, 따로 올랐습니다.

꼭 볼 건물

인정전

Injeongjeon

정전입니다. 인정은 어진 정사라는 뜻입니다. 1804년 재건 건물이고, 대한제국 때 안을 다시 고쳤습니다. 전등을 단 흔적이 그 층의 것입니다. 태종의 건물이 아닙니다.

돈화문

Donhwamun

1412년의 정문입니다. 서울 궁궐 정문 가운데 자리가 가장 오래 이어진 문입니다.

선정전

Seonjeongjeon

왕이 평소 정사를 보던 편전입니다. 푸른 기와가 남아 있습니다. 공식 잔치의 인정전과 하루 업무의 선정전은 다른 건물입니다.

후원과 부용지

Huwon, Buyongji

궁 뒤의 정원입니다. 공식 이름은 후원입니다. 비원이라는 말은 뒤에 붙었습니다. 부용지는 연못이고 부용정은 그 위의 정자입니다. 정조 때 지금에 가까운 모습이 됩니다. 주합루에는 1776년 규장각을 두었습니다.

낙선재

Nakseonjae

헌종 때 지은 침전 영역입니다. 대한제국이 끝난 뒤 황실이 여기 남았습니다. 1989년 덕혜옹주가 낙선재에서 죽습니다. 영화의 구출 이야기와 죽은 자리는 다른 문장입니다.

훼손과 복원

순종이 살았기 때문에 경복궁이나 경희궁처럼 통째로 헐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1917년 화재, 1920년의 재건, 일제식 내부 고침이 있습니다. 1990년대에 인정전 행각을 정비했습니다. 후원은 입장 인원을 제한하는 관람이 이어집니다.

관람

돈화문이 정문입니다. 후원은 시간을 정해 들어가는 날이 많습니다. 그날의 인원과 시간은 궁 안내가 바뀌므로 여기 숫자로 적지 않습니다.

광해군정조가족관계도의 태종가족관계도의 인조가족관계도의 순종창경궁 · 동궐한양 · 서울궁궐 연표조선의 건국 · 나두연표서울 시내 탐험에서 보기 (창덕궁·후원)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광해, 왕이 된 남자」

    Masquerade · 2012 · 영화

    광해군이라는 이름과, 임진왜란 뒤의 궁궐을 처음 상상할 때 자주 거론됩니다. 왕과 꼭 닮은 사람이 보름을 대신한다는 설정이 극의 뼈대입니다.

    광해군이 1608년부터 1623년까지 왕이었고,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일은 역사입니다. 대역이 보름 동안 정치를 바꿨다는 줄거리는 창작입니다. 그런 일이 실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해군제주창덕궁

  • 「덕혜옹주」

    The Last Princess · 2016 · 영화

    대한제국이 끝난 뒤의 황실을,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일생으로 만날 때 자주 찾는 영화입니다. 덕수궁과 창덕궁 낙선재가 그 삶의 자리입니다.

    덕혜옹주는 1912년에 태어난 고종과 귀인 양씨의 딸입니다. 일본으로 갔다가 돌아와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죽었습니다. 영화의 구출과 개인의 대사는 극입니다. 죽은 자리와 극의 결말을 같은 문장으로 외우지 않습니다.

    덕수궁창덕궁 · 낙선재가족관계도의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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