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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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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제주

濟州 · Jeju

탐라라는 이름으로 더 오래 불린 섬입니다. 이 지도에서는 여섯 번째 고을로, 가볍게 그러나 빠뜨리지 않고 적습니다.

이 땅의 역사

제주는 남해 아래의 큰 섬입니다. 조선의 팔도 이름에 따로 오르내리기보다, 오랫동안 전라도의 관찰사가 맡는 먼 고을이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는 본토 다섯 도와 구분하려고 여섯 번째 칸으로 둡니다.

고유한 정치체의 이름은 탐라입니다. 백제·신라와 교섭하다가 고려에 들어옵니다. 938년 무렵 탐라의 태자가 고려에 입조했다는 기록이 있고, 1105년에는 탐라군이 되어 고려의 군현으로 묶입니다. 제주라는 한자 행정 이름은 그 뒤의 층입니다.

섬의 역사는 본토의 왕조 연표를 그대로 축소한 것이 아닙니다. 말 목장, 유배, 바람과 돌의 살림이 본토 도읍의 궁궐 이야기와 나란히 있습니다.

이름의 유래

오래 쓴 이름은 탐라이고, 제주는 고려 이후의 한자 행정 이름입니다.

통설

탐라는 기록에 나오는 섬의 나라 이름입니다. 고려가 직접 다스리기 시작한 12세기 이후 제주라는 고을 이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본토의 도 이름처럼 두 도시의 머리글자를 딴 것은 아닙니다.

다른 설

제(濟)를 ‘바다를 건넌다’로 푸는 말은 한자 뜻풀이입니다. 왜 하필 그 글자인지를 밝힌 당대의 한 줄 문서는 여기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삼신인의 고·양·부 세 성씨 건국 이야기는 후대에 정리된 전설입니다.

땅의 결

한라산이 섬의 가운데에 있고, 마을은 해안을 따라 돕니다. 물이 귀해 돌과 바람이 살림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본토에서 보면 먼 바닷길이었습니다. 정치범과 폐위된 왕을 보내는 유배지이면서, 동시에 목장과 진상의 섬이었습니다.

주요 도시

같은 도의 다른 고을

탐라

탐라는 제주도의 옛 나라 이름입니다. 별개의 현대 도시가 아닙니다. 고을나·양을나·부을나가 벽랑국 세 공주와 혼인했다는 이야기는 신화로 적습니다. 섬에 사람이 일찍 산 것은 고고학의 사실이고, 그 신화의 연대는 사실이 아닙니다.

길목의 사건

고려의 군현, 1105년

탐라가 완전히 바깥의 독립국으로 남아 있던 상태가 끝나고, 고려의 군현 질서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뒤 원의 목장이 설치되는 등 본토 정치의 바람이 섬에 직접 닿습니다.

광해군의 유배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은 강화에 있다가 제주로 옮겨지고, 1641년 이 섬에서 죽습니다. 연산군의 유배지(강화 교동)와 섞지 않아야 합니다. 영화 「광해」의 대역 이야기는 이 유배와 무관한 창작입니다.

문화 메모

돌하르방, 해녀의 물질, 사면이 검은 돌담은 본토 궁궐 문화와 다른 살림의 기술입니다. 언제부터인지를 한 왕의 재위로 못 박지는 않습니다.

유배 문학이 섬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유배객의 눈에 보인 제주와, 섬사람의 하루는 같은 문장이 아닙니다.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광해, 왕이 된 남자」

    Masquerade · 2012 · 영화

    광해군이라는 이름과, 임진왜란 뒤의 궁궐을 처음 상상할 때 자주 거론됩니다. 왕과 꼭 닮은 사람이 보름을 대신한다는 설정이 극의 뼈대입니다.

    광해군이 1608년부터 1623년까지 왕이었고,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일은 역사입니다. 대역이 보름 동안 정치를 바꿨다는 줄거리는 창작입니다. 그런 일이 실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해군제주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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