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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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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광해군

조선 광해군 · Gwanghaegun

재위 1608–1623년

역사

임진왜란의 세자로 분조를 이끌었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줄을 타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났습니다.

광해군은 선조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후궁이라 적자의 정통이 약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나자 세자 신분으로 분조 — 왕을 대신하는 임시 조정 — 를 이끌고 백성을 모았습니다. 이 전시의 역할은, 나중에 폐위의 명분과 별도로 남아 있습니다.

1608년 즉위 뒤 전란으로 무너진 궁궐과 토지를 수습합니다. 경기도에서 대동법을 시행해 특산 대신 쌀로 세금을 걷으려 한 일이 대표적입니다. 대동법이 전국으로 퍼진 것은 그 뒤 왕들의 일이라, 광해군이 제도를 완성했다고 쓰지는 않습니다.

외교에서는 명나라와 새로 커진 후금 어느 한쪽만 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은 이것을 명을 배신한 정치로 몰아 폐위의 명분으로 삼습니다. 후대의 평가는 그 외교를 현실적인 줄타기로 다시 읽는 쪽이 많습니다. 어느 쪽을 도덕으로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폐위된 사실과, 반정의 명분과, 나중의 재평가는 세 문장입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대역이 보름 동안 왕 노릇을 한다는 줄거리는 창작입니다. 실록에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폐위 뒤 광해군은 강화를 거쳐 제주로 옮겨지고 1641년 섬에서 죽습니다. 연산군처럼 묘호가 없어 광해군으로 부릅니다.

가족관계도에서 보기제주 유배창덕궁경희궁경기도 · 대동법이순신 · 임진왜란서울 시내 탐험에서 보기 (창덕궁·후원·덕수궁·경희궁)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광해, 왕이 된 남자」

    Masquerade · 2012 · 영화

    광해군이라는 이름과, 임진왜란 뒤의 궁궐을 처음 상상할 때 자주 거론됩니다. 왕과 꼭 닮은 사람이 보름을 대신한다는 설정이 극의 뼈대입니다.

    광해군이 1608년부터 1623년까지 왕이었고,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일은 역사입니다. 대역이 보름 동안 정치를 바꿨다는 줄거리는 창작입니다. 그런 일이 실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해군제주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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