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OKSUGUNG
덕수궁
德壽宮 · 정릉동 행궁 · 경운궁 · 행궁, 대한제국의 황궁
1593년 행궁 · 1907년 덕수궁
처음부터 궁으로 지은 집이 아닙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쓴 행궁이고,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의 황궁입니다.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1907년부터입니다.
이름의 유래
덕(德)은 덕, 수(壽)는 오래 삶입니다. 물러난 임금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이름입니다.
통설
1907년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가 머무는 경운궁을 덕수궁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정릉동 행궁, 그다음 경운궁입니다. 세 이름은 같은 자리의 다른 층입니다.
다른 설
인조 초에도 덕수라는 궁호가 잠깐 쓰였다는 기록이 거론됩니다. 오늘의 이름과 곧장 이어진 궁호로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간판의 덕수궁은 1907년의 이름입니다.
언제, 누가, 왜
누가 머물렀나
선조와 광해군
선조는 정릉동 행궁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어느 전각인지는 석어당으로 추정할 뿐, 확정된 이름은 아닙니다. 광해군 즉위 자리도 즉조당으로 추정됩니다. 인조도 반정 직후 잠시 이 행궁을 썼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추정은 추정으로 둡니다.
고종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 있습니다. 1897년 2월 20일 경운궁으로 돌아옵니다. 경복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1907년 양위한 뒤에도 이 궁에 머물다 1919년 함녕전에서 죽습니다.
주요 사건
대한제국 선포,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황제를 칭한 자리는 궁 안 정전이 아니라 옆의 환구단입니다. 하늘에 제사하던 둥근 단입니다. 단은 일제강점기에 헐리고 황궁우만 남았습니다. 나라의 이름을 대한으로 바꾼 해와, 궁의 이름을 덕수라고 바꾼 1907년은 다른 해입니다.
1904년 대화재
중화전, 석어당, 즉조당, 함녕전 등이 탑니다. 지금 중화전은 그 불 뒤에 규모를 줄여 다시 세운 정전입니다. 즉위식의 큰 전각이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을사늑약, 1905년 11월 17일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맺어집니다.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조약이고, 늑약은 억지로 맺었다는 이름입니다. 중명전은 담 안 정전 줄이 아니라 궁역의 서양식 전각이었습니다. 지금 그 건물에서 조약의 전시를 봅니다.
1907년, 덕수궁
고종이 물러나고 순종이 황제가 됩니다. 순종은 창덕궁으로 가고, 고종이 남은 경운궁을 덕수궁이라 부릅니다. 같은 해에 이름이 갈라진 것입니다.
꼭 볼 건물
중화전
Junghwajeon
대한제국의 정전입니다. 가운데 중, 화할 화. 1904년 불 뒤에 줄여 다시 세웠습니다. 정문은 1906년 대안문에서 이름을 바꾼 대한문입니다.
석조전
Seokjojeon
1910년에 완공된 서양식 석조 건물입니다. 연회와 접견에 썼고, 뒤에는 미술관으로도 쓰였습니다. 조선 전기의 목조 정전과 같은 층이 아닙니다.
중명전
Jungmyeongjeon
을사늑약의 건물입니다. 수옥헌으로도 불렸습니다. 궁의 정전 축 밖에 있습니다.
함녕전
Hamnyeongjeon
고종의 침전입니다. 1904년 불에 탄 뒤 다시 지어졌고, 1919년 고종이 여기서 죽습니다.
돈덕전
Dondeokjeon
대한제국이 외국 사신을 만나던 서양식 전각입니다. 일제 때 헐렸다가 2023년 9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궁능 안내는 옛 부재를 그대로 세운 복원보다 재건에 가깝다고 봅니다.
훼손과 복원
대한제국 때의 궁역은 지금보다 넓었습니다. 도로와 호텔, 공원으로 잘려 나갔습니다. 2007년부터 복원을 시작했고, 2019년 광명문을 옮겼으며 2023년 돈덕전을 다시 열었습니다. 환구단 전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관람
대한문이 정문입니다. 중명전은 돌담 길 바깥이라 정전만 보면 빠집니다. 석조전과 중화전은 같은 마당이 아닙니다.
가족관계도의 선조가족관계도의 고종가족관계도의 순종광해군경복궁 · 아관파천한양 · 서울궁궐 연표서울 시내 탐험에서 보기 (덕수궁)
궁궐이 나오는 영화·드라마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