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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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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MOK

제주목

濟州牧 · 제주

탐라의 중심 읍이 고려·조선의 제주목이 된 자리입니다. 섬 전체와 읍을 완전히 같은 말로 쓰지 않습니다.

이름의 유래

제주는 섬의 한자 행정 이름이고, 제주목은 그 섬을 맡던 고을의 격입니다.

통설

탐라가 고려의 군현이 된 뒤 제주라는 이름이 쓰였습니다. 조선은 제주를 목(牧)으로 두어 목사가 다스렸습니다. 목은 고을의 등급이지 사람의 이름이 아닙니다. 오늘의 제주시는 그 읍과 현대 행정이 겹친 이름입니다.

다른 설

섬 전체를 예부터 제주라 불렀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기록의 나라 이름은 탐라입니다. 한자 제(濟)의 뜻풀이는 제주 도 이름의 다른 설과 같습니다.

어떻게 선 고을인가

탐라는 본토의 삼국과 사신을 주고받았습니다. 백제와 신라 양쪽에 조공한 시기가 기록에 나옵니다. 독립된 작은 나라로 보다가, 1105년 탐라군이 되어 고려 안으로 들어옵니다.

원의 간섭기에는 탐라총관부 같은 기구가 놓이고 말 목장이 커집니다. 본토 왕조가 바뀌어도 섬은 목장과 유배지라는 역할을 오래 유지합니다. 조선의 제주목사는 전라도 관찰사의 계통 아래 있었습니다.

누가 다스렸나

탐라의 성주(星主)는 섬의 토착 지배자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고려에 편입된 뒤에도 한동안 명맥이 언급됩니다. 조선의 목사와 같은 직책은 아닙니다.

조선 목사는 파견 관리입니다. 섬사람의 자치와 충돌한 기록이 드물지 않습니다. 목사가 곧 탐라 왕은 아닙니다.

길목의 사건

광해군의 죽음, 1641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 제주로 유배되어 여기서 죽습니다. 제주목의 객사나 유배지가 궁궐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세한 폐위의 이유는 광해군 글에 적습니다.

목장

원과 고려, 조선이 이 섬에서 말을 길렀습니다. 진상 말의 숫자는 섬사람에게 부담이었습니다. 관광의 승마와 같은 문장으로 적지 않습니다.

문화 메모

삼성혈의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신화는 탐라 건국 전설입니다. 세 성씨가 섬의 옛 성으로 남은 것은 사회사의 사실이고, 벽에서 나왔다는 출생은 신화입니다.

해녀의 물질과 돌담은 섬의 살림 기술입니다. 어느 왕 몇 년에 시작했다고 적지 않습니다. 기록이 그렇게 한 줄로 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주 전체 보기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광해, 왕이 된 남자」

    Masquerade · 2012 · 영화

    광해군이라는 이름과, 임진왜란 뒤의 궁궐을 처음 상상할 때 자주 거론됩니다. 왕과 꼭 닮은 사람이 보름을 대신한다는 설정이 극의 뼈대입니다.

    광해군이 1608년부터 1623년까지 왕이었고,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일은 역사입니다. 대역이 보름 동안 정치를 바꿨다는 줄거리는 창작입니다. 그런 일이 실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해군제주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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