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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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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GSAN-RI AND BONGO-DONG

청산리·봉오동

일제강점기 · 1920년

1920년 만주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친 두 싸움입니다. 6월 봉오동은 홍범도 연합 부대, 10월 청산리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가 중심입니다. 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청산리와 봉오동 모식도두만강 북쪽 간도의 모식도입니다. 강에 가까운 봉오동은 1920년 6월, 더 북쪽 산악의 청산리는 1920년 10월입니다. 축척은 없습니다.청산리 · 10월 · 여러 날의 산악봉오동 · 6월 · 골짜기두만강남 · 조선일본군이 북으로 들어옴
축척이 없는 모식도입니다. 자리를 외우는 그림이고, 해도나 측량 지도가 아닙니다.

어떻게 이겼나

  1. 1. 봉오동, 골짜기

    1920년 6월, 두만강 북쪽 지린 왕칭의 봉오동 골짜기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칩니다. 좁은 계곡으로 들여보낸 뒤 높은 쪽에서 공격합니다. 지형을 아는 사람이 길목을 고른 싸움입니다.

  2. 2.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니다

    홍범도가 대표 지휘관으로 기억됩니다. 최진동 등 여러 독립군 부대가 함께했습니다. 홍범도 혼자 골짜기를 막은 것처럼 쓰면 연합이 사라집니다.

  3. 3. 가을의 추격

    일본군은 그해 가을 독립군의 근거지를 치러 간도로 들어옵니다. 출병의 명분이 된 훈춘 사건은 배후 해석이 갈립니다. 이 페이지는 배후를 단정하지 않고, 독립군이 산악으로 이동한 사실만 적습니다.

  4. 4. 청산리, 여러 날

    1920년 10월, 백운평·어랑촌 등 청산리 일대의 여러 싸움이 이어집니다. 중심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입니다. 홍범도의 부대도 같은 작전에 참여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의 계곡, 하루의 전투로만 외우지 않습니다. 사상자 수는 한국과 일본의 기록이 달라 숫자를 못 박지 않습니다.

  5. 5. 승리가 곧 광복은 아니다

    독립군은 추격을 피해 더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1921년 자유시에서 독립군 부대 사이에 충돌이 있습니다. 봉오동과 청산리는 전술의 승리이고, 나라가 그해에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홍범도의 이후 소련 행로와 김좌진의 1930년 피살은 전투 페이지의 결말이 아니라 각 인물 페이지에 나눕니다.

홍범도 · 봉오동김좌진 · 청산리나두세계 · 일본나두세계 · 중국나두연표

아래 작품은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봉오동 전투」

    The Battle: Roar to Victory · 2019 · 영화

    1920년 6월 봉오동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골짜기로 끌어들여 친 승리를 볼 때 고릅니다.

    봉오동 승리는 역사입니다. 홍범도가 연합 부대를 이끈 대표 지휘관으로 기억됩니다. 화면 속 개인들의 사연과 전투 동작은 극입니다. 그해 10월 김좌진의 청산리와는 다른 싸움이라, 두 전투를 한 장면으로 합치지 않습니다.

    홍범도김좌진 · 청산리는 다른 달청산리·봉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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