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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JU

전주

全州 · 전라도

백제의 완산, 후백제의 도읍, 조선 왕실 이씨의 본관이 있는 고을입니다.

이름의 유래

완산이 신라 경덕왕 때 전주로 한자화되었다는 것이 이름의 뼈대입니다.

통설

백제·후백제의 완산(完山)을 신라가 전주(全州)로 고쳤습니다. 경덕왕 16년(757) 무렵의 전국 지명 한화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통설입니다. 전라도의 ‘전’이 이 고을입니다.

다른 설

‘온전한 고을’이라는 말은 全의 글자 뜻입니다. 완산이라는 옛 이름의 소리를 어떻게 전으로 옮겼는지는 의역에 가깝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특정 우물이나 시장에서 이름이 나왔다는 민간어원은 통설이 아닙니다.

어떻게 선 고을인가

마한과 백제의 지방 고을로 자라난 자리입니다. 사비나 웅진처럼 백제 왕의 수도로 오래 쓰인 도시는 아닙니다. 이름이 커진 것은 후백제 때입니다.

견훤이 892년 무렵 일어나 900년 완산을 도읍 삼아 후백제를 칭합니다. 신라의 남은 왕경과 왕건의 고려 사이에서 남쪽의 한 축이 됩니다. 936년 신검의 후백제가 고려에 항복하면서 전주는 다시 지방 도시가 됩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본관이 전주 이씨입니다. 본관은 조상의 출신 고을이지, 이성계가 전주에서 자라 한양으로 올라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의 정치 기반은 동북면의 군사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은 전주를 왕실의 관향으로 특별하게 대우했습니다.

누가 다스렸나

후백제 30여 년 동안 견훤의 왕성이 있던 도시입니다. 그 전후로는 전주 부윤·관찰사가 머무는 전라도의 읍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전라 감영이 여기 있었습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의 어진(초상)을 모시던 전각입니다. 왕이 사는 궁궐이 아니라, 본관 고을에 둔 왕의 초상 집입니다. 한양의 경복궁과 역할을 바꾸어 쓰면 안 됩니다.

길목의 사건

후백제의 수도

견훤은 신라 경애왕을 죽게 할 만큼 경주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그러나 나주 등 바다 쪽을 왕건에게 내주면서 앞뒤가 흔들립니다. 아들의 권력 다툼 끝에 견훤 자신이 고려로 넘어간 일도 이 전쟁의 일부입니다.

경기전과 풍패지향

조선은 전주를 풍패지향, 곧 왕업이 일어난 땅처럼 높여 불렀습니다. 한나라 고조의 고향 풍패에 빗댄 말입니다. 수사입니다. 태조가 전주에서 즉위한 것은 아닙니다. 즉위는 개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문화 메모

오목대는 이성계가 남원에서 왜구를 치고 돌아가며 멈췄다는 전승이 있는 언덕입니다. 전승은 전승으로 적습니다. 한옥 마을은 그 전각과 읍의 살림이 오늘의 거리로 남은 모습입니다.

비빔밥과 한옥은 전주를 알리는 오늘의 문화입니다. 후백제의 정치나 조선 왕실 본관을 설명하는 1차 자료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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