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EUNG
강릉
江陵 · 강원도
동해안의 오랜 고을입니다. 강원도라는 이름의 ‘강’이 여기서 왔습니다.
이름의 유래
옛 이름은 하슬라·명주이고, 강릉은 고려 이후에 자리 잡은 행정 이름입니다.
통설
삼국 기록의 하슬라(河瑟羅)를 강릉 일대로 봅니다. 신라 경덕왕 때의 한화 정책으로 명주(溟州)가 되었고, 고려 이후 강릉이라는 이름이 대도호부의 이름으로 굳습니다. 강원도의 머리글자가 된 이유입니다.
다른 설
‘큰 언덕’ ‘큰 강’ 같은 한자 뜻풀이는 강릉이라는 글자를 보고 한 설명입니다. 하슬라가 어떤 우리말에서 왔는지는 재구가 갈립니다. 하나의 민간어원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선 고을인가
동해안은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고, 삼국 초기에는 동예라는 세력과 고구려의 손이 언급됩니다. 신라가 북쪽으로 세력을 뻗으며 이 해안을 자기 주로 만들었습니다. 명주는 그 결과입니다.
고려와 조선에서 강릉은 영동의 대표 고을이었습니다. 관찰사 소재지가 항상 여기였던 것은 아닙니다. 도의 이름만 강릉을 기억합니다.
누가 다스렸나
강릉대도호부는 조선에서 격이 높은 고을이었습니다. 대도호부사는 보통 군수보다 위계가 높습니다. 다만 한양의 왕을 대신하는 별도 왕국은 아니었습니다.
지방 사족과 향교가 고을 운영에 관여했습니다. 바다를 낀 고을이라 왜구 방어도 읍의 일이었습니다.
길목의 사건
율곡의 외가
오죽헌은 이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쪽 집으로 전해집니다. 이이는 강릉에서 태어나 한양에서 활동한 조선 중기의 학자입니다. 왕이 아닙니다. 강릉을 ‘율곡의 수도’로 쓰면 지도가 틀립니다.
대관령
한양과 강릉을 잇는 큰 고개가 대관령입니다. 조선의 관리와 선비가 관동을 유람하려면 이 고개를 넘었습니다. 경포의 경치는 그 길의 끝에 있습니다.
문화 메모
경포대는 바다를 보는 누각으로, 관동 팔경의 하나로 오래 꼽혔습니다. 팔경의 목록은 후대의 풍류 목록이지 행정 구역은 아닙니다.
오죽헌의 대나무와 율곡 이야기는 조선 중기의 층입니다. 신라 명주의 주치(州治)와 같은 풍경으로 겹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