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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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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OF GWIJU

귀주대첩

고려 · 1019년

거란(요)의 세 번째 큰 침입에서, 개경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돌아가던 군대를 귀주에서 친 싸움입니다. 고려의 장수는 강감찬입니다.

귀주대첩 모식도거란군이 북쪽에서 개경 쪽으로 내려왔다가, 성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돌아가던 길을 귀주에서 고려군이 막은 그림입니다. 축척은 없습니다.북 · 요 (거란)들어옴귀주퇴로를 막음남 · 개경 (함락되지 않음)개경과 귀주도 이 지도 밖
축척이 없는 모식도입니다. 자리를 외우는 그림이고, 해도나 측량 지도가 아닙니다.

어떻게 이겼나

  1. 1. 세 번째 침입

    거란은 993년, 1010년, 그리고 1018년에 고려를 크게 칩니다. 1018년의 주장은 소배압입니다. 서희의 993년 담판으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담판과 귀주는 다른 해의 다른 방법입니다.

  2. 2. 들어오며 힘이 깎이다

    강감찬은 흥화진 등에서 들어오는 거란군을 깎습니다. 고려군은 개경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식량과 속도를 빼앗습니다. 한 성의 결전만으로 설명하면 지도가 짧아집니다.

  3. 3. 개경은 열리지 않다

    거란군은 개경 가까이까지 오지만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북으로 돌아섭니다. 개경은 오늘의 개성 쪽이라 이 남쪽 지도 밖입니다. 수도를 지킨 일과, 돌아가는 길을 친 일은 이어진 두 단계입니다.

  4. 4. 귀주에서 퇴로가 막히다

    1019년 귀주에서 고려군이 퇴로를 막아 크게 칩니다. 귀주는 평안북도 구성 일대로 봅니다. 강감찬의 본대와 다른 부대가 합류했다는 것이 전투의 뼈대입니다. 지친 군대가 좁은 퇴로에 몰린 자리입니다.

  5. 5. 그 뒤의 침입

    이 규모의 거란 침입은 귀주 뒤에 이어지지 않습니다. 승리의 병력 숫자는 기록마다 크고, 오늘의 통계처럼 외우지 않습니다. 낙성대에서 별이 떨어졌다는 강감찬의 출생 이야기는 전투와 다른 전승입니다.

강감찬서희 · 993년 담판나두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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