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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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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JU

경주

慶州 · 경상도

신라의 왕경 서라벌입니다. 거의 천 년 동안 남쪽 나라의 수도였다가, 935년 이후 지방 도시가 됩니다.

이름의 유래

신라 때의 이름은 서라벌·금성이고, 경주는 고려가 항복 뒤에 붙인 이름입니다.

통설

서라벌(徐羅伐)은 수도를 뜻하는 옛말과 닿아 있다는 언어학 설명이 유력합니다. 금성(金城)은 왕경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입니다.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뒤, 고려 태조가 이 도시를 경주라 불렀습니다. ‘경사스러운 고을’은 그 한자의 뜻풀이입니다.

다른 설

서울과 서라벌이 같은 말의 갈래라는 설은 소리의 재구입니다. 경주가 처음부터 서울의 별명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닭의 숲, 탈해 설화 속의 지명들은 건국 신화의 지명이지 행정 연혁이 아닙니다.

어떻게 선 고을인가

삼국사기는 혁거세가 기원전 57년 여섯 마을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신화입니다. 경주 분지에 초기 신라의 무덤이 밀집한 것은 고고학의 사실입니다. 신화의 연대와 무덤의 연대를 한 줄로 붙이지는 않습니다.

진흥왕·선덕여왕·문무왕의 정치는 모두 이 도시를 수도로 두고 벌어졌습니다. 월성(반월성)이 왕성이고, 주변의 대릉원과 황남대총, 천마총은 왕경의 무덤들입니다. 천마총은 발굴하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주인 이름이 금석문에 있는 무덤이 아닙니다.

누가 다스렸나

신라는 김씨 왕족과 진골 귀족이 경주에서 정치를 돌렸습니다. 화랑은 귀족 청소년의 무리로, 후대 소설의 무술 단체와 같지 않습니다. 왕경 밖에 있는 6부 밖의 사람은 쉽게 진골이 되지 못했습니다.

통일 이후에도 귀족의 본거지는 경주에 남았습니다. 지방이 커지고 9세기에 세금이 무너지면서, 왕경 귀족의 정치가 나라 전체를 못 감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935년 이후 경주는 고려의 한 고을입니다.

길목의 사건

한강으로 나가다

진흥왕은 경주에만 머물지 않고 한강과 함경 해안까지 순수비를 세울 만큼 영역을 넓혔습니다. 비의 위치는 경주 바깥입니다. 정치의 결정은 왕경에서 나갔습니다.

대왕암 전승

문무왕이 죽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왜적을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감포 바다의 바위가 그 수중릉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유언의 취지는 삼국사기에 나오고, 어느 바위가 무덤인지는 전승입니다. 문무왕 글에서 다시 적습니다.

문화 메모

불국사와 석굴암은 8세기 통일신라의 절입니다. 토함산 자락에 있습니다. 김대성 창건 설화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입니다. 건축이 남은 것과 설화의 문장은 따로 읽습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세웠다고 오래 전해집니다. 돌에 ‘선덕이 세웠다’는 문장이 새겨진 것은 아닙니다. 별을 보던 대인지, 다른 상징물인지도 연구가 갈립니다. 선덕 글에서 전설과 유적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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