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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야기Kore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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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HAE

김해

金海 · 경상도

금관가야의 중심입니다. 수로왕 이야기는 전설이고, 철과 무덤은 고고학입니다.

이름의 유래

가야 때의 이름은 금관(가락)이고, 김해는 신라에 흡수된 뒤 자리 잡은 고을 이름입니다.

통설

변한의 구야국을 금관가야·가락국과 같은 계통으로 봅니다. 532년 신라에 항복한 뒤 금관군이 되고, 고려 때 김해라는 이름이 고을에 붙습니다. 김(金)은 금관의 금을 이은 것이라는 설명이 통설에 가깝습니다. 김해 김씨의 시조 전설과 지명이 나중에 겹쳐 읽힙니다.

다른 설

‘금빛 바다’라는 풍경 풀이는 한자 뜻에 기댄 다른 설명입니다. 수로왕이 알에서 나왔다는 삼국유사의 건국 신화는 지명 연혁과 별개의 전설입니다.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허왕후 이야기도 그 신화의 일부이고, 아유타가 오늘의 인도 어디인지는 연구마다 다릅니다.

어떻게 선 고을인가

낙동강 하구의 평야와 바다는 교역에 유리했습니다. 변한 단계부터 철이 유명했다는 중국 쪽 기록이 있고,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철기와 교역품이 나옵니다. 금관가야가 하나의 큰 왕국으로 커진 시기는 3–5세기로 보는 설명이 많습니다.

삼국유사는 42년 수로왕이 황금 알에서 나와 가락을 열었다고 적습니다. 연대와 탄생은 신화입니다. 수로왕릉이라고 모신 봉분이 김해에 있으나, 그 봉분이 1세기의 왕을 그대로 묻은 자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대성동 고분과 역할을 구분합니다.

누가 다스렸나

금관가야의 왕은 수로에서 구해(구충)까지로 계보가 전해집니다. 그 계보의 앞부분은 신화에 가깝고, 마지막 왕 구해왕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한 일은 삼국사기의 사건입니다.

가야는 김해만의 나라가 아닙니다. 고령 대가야, 함안 아라가야 등이 따로 있었습니다. 김해를 보면 금관가야를 보는 것이고, 가야 전체를 본 것은 아닙니다. 대가야는 562년에야 신라 진흥왕에게 무너집니다.

길목의 사건

532년의 항복

금관가야가 신라의 군현이 됩니다. 왕족은 신라 진골로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김유신의 가문이 금관가야 왕족의 후예로 전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계 전승의 세부는 후대의 정리입니다.

왜와 낙랑

무덤에서 나오는 왜계 유물과 북방 유물은 이 포구가 거래의 자리였음을 보여 줍니다. 거래가 있었다는 것과, 김해가 왜의 식민지였다는 것은 다른 주장입니다. 후자는 여기서 사실로 적지 않습니다.

문화 메모

가야금의 우륵은 대가야(고령) 쪽 전승입니다. 김해의 금관과 우륵의 악기를 한 도시의 이야기로 붙이지 않습니다.

허왕후릉과 수로왕릉의 제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념입니다. 기념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삼국유사의 혼인 이야기가 1세기의 보고서가 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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